우리는 모두 자살 사별자입니다 / 고선규
우리는 자살 사별자들의 삶을 잘 생각하지 않는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경우 죽음의 이유를 숨기는 경우가 많다. 대충 교통사고로 죽었다던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안타깝게 갔다고 말하긴 하지만 무언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다. 가족의 자살 이후 남은 가족들은 자살의 이유를 찾기 위해 탐정이 된다. 그리고 '만약에...'라는 가정을 수도 없이 한다. '만약에... 내가 ~ 했더라면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끝없는 가정. 자살하는 사람들의 80%가 자살 의지를 알린다는데 그렇다면 그 징후를 알아채지 못해 자살을 하게 되었다며 죄책감을 갖는다. 물론 자살을 아무리 막으려도 해도 의지가 강한 사람은 막지 못한다. 한 번 두 번은 막을지 몰라도 24시간 감시하는 폐쇄병동에서도 자살을 한다는데 사람의 노력으로 안되는 것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죄책감을 조금 덜 수 있을 거다. 이미 일어난 일에 '만약에'라는 가정은 사별자들에게 위로가 되지 않는다.
애도는 시간에 따라 변화무쌍하며,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사별자들은 위로받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위로받는 처지가 된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기도 합니다. 애도는 예측 가능한 단계가 아니라 역동적인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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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은 힘들지 라며 위로받고 싶다가도 어떤 날은 아무 말도 안하고 모른 척 지나가주길 바란다. 그 타이밍을 주변 사람이 잡기란 쉽지 않다. 애도의 형태고 가지각색이다. 어떤 사람은 눈물로 지새우며 애도를 하고 어떤 사람은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애도를 하고 있다.
때로 감당하기 힘든 심리적 고통은 타인의 고통을 공유할 만한 마음의 공간을 남겨두지 않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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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공감과 위로가 먹히는 것도 그만큼의 자리가 남아있을 때 해당된다.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갖고 있을 때 그 마음을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다. 자신과 같은 고통을 가진 사람들과 모임을 가지며 고통을 나누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이젠 누가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가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이라는 사실은 다 안다. 어린이집에서 원아가 죽으면 난리가 나는데 하루에 몇십 명씩 자살을 해도 이유가 무엇인지, 앞으로 재발 방지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대안 구성이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남은 가족들은 자살을 숨겨야 하는 죽음으로 보고 애도의 시간을 갖기도 전에 숨기기 바쁘다. 자살은 냇가에 돌을 튕긴 것처럼 넓은 범위 안에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실제로 유명인이 자살 기사 후 자살하는 사람이나 자살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고 한다.
자살 사별자... 우리는 자살한 사람에 대한 안타까움 또는 호기심으로 바라보지만 남은 자살 사별자들에 대해 관심 가진 적은 있는가. 또 다른 자살을 막기 위해서는 남은 자살 사별자들의 마음을 잘 살펴주어야 한다. 실제로 나라에서 자살 1년 이내 자살 사별자(가족)에게 나라에서 100만 원의 심리비용 입원비를 지원한다고 하니 꼭 혜택을 받았으면 좋겠다.